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는 진실인가 (feat. 알쓸신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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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는 진실인가 (feat. 알쓸신잡)

by Crim 2017. 7. 9.

 

예전부터 내려온 가짜뉴스 중 하나인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

 

과연 의자왕은 삼천명의 궁녀를 데리고 있었고

 

이 궁녀들이 진짜 낙화암에서 자결을 한 것일까?

 

일단 의자왕이 알려진 대로 호색한이고

 

방탕한 사람이었을지에 대해 알아봐야지.

 

 

일단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따르면

 

의자왕은 효심도 깊고 우애도 깊고

 

즉위 직후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의 40여 성을 함락시킬 정도로

 

능력까지 탁월했던 인물.

 

하지만 치세 15년이 지나자

 

사람이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역시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

 

흠. 믿음이 안가는 이유는 뭘까.



 

왜냐.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기 때문.

 

신라의 입장에서는 의자왕이

 

주색을 밝히고 방탕한 왕이라야

 

외세의 힘을 빌어서라도 멸망을 시킬 명분이 서기 때문.

 

그래서 의자왕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빠졌고

 

백제의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기에

 

우리 신라가 어쩔 수 없이 당나라의 힘을 빌어서라도

 

백제를 칠 수 밖에 없었다! 라고 삼국사기에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의자왕을 부정적으로 적은

 

<삼국사기>에도 삼천궁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잉?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가 문서로 남은

 

최초의 기록은 조선 초의 시집 <속동문선> 제5권.

 

의자왕과 삼천궁녀가 사실이었다면

 

그것이 조선 초에서야 기록이 되었을리가 있을까.

 

통일신라부터 고려까지 이르는

 

700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는 기록으로 된 게 없고?

 

이 삼천궁녀 이야기가 적힌 <속동문선>은

 

완벽하게 유교 중심으로 쓰여진 책.

 

'삼천궁녀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했다'

 

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봐라. 궁녀들도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그 많은 숫자가 모두 자결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옛날에 말이지!'

 

라는 이야기를 덧붙여 여성들의 정절에 대해

 

강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닐지.



 

 

사실 애초에 이런 추측을 할 필요도 없는게

 

'삼천 명'이라는 숫자의 궁녀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

 

700만 정도의 인구였고 왕들도 별로였던 조선 후기에도

 

궁녀의 수가 오백명 정도였는데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전체 총 인구가

 

최대 200만 정도로 추정 가능한 백제에

 

어떻게 삼천궁녀가 존재할 수가 있냐는 말이지.

 

 

자.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자면

 

의자왕이 호색한이었고 방탕했는지는

 

<삼국사기>의 일방적인 기록이니 완벽히 믿을 순 없고

 

삼천궁녀가 실제로 자결을 했다면

 

특히 <삼국사기>에 안적혔을리는 만무하고.

 

애초에 '삼천'이라는 숫자가 실제 숫자가 아닌

 

단순히 '많은 수'를 뜻하는 의미로 쓰였거나

 

의도적인 과장을 위해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고로,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조선판 가짜뉴스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닐까 하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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